오만잡생각2009.12.23 14:05
걍 타자 연습 함 해 본다.  독수리 훈련이다.



Doxa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제시되는 명제의 한 유형이다. 지각적-감정적으로 체험된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떤 사람ㅂ이 그로부터 하나의 순순한 자질을 끌어낸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질을 추상화하는 동시에, 공통된 감정을 느끼는 어떤 총칭적 주제에 스스로를 동일화시킨다.


견해는 추상적 사유이며, 이런 추상화에서 비방은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견해란 특정한 상태들의 보편적 기능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견해는 지각작용으로부터 추상적 자질을, 그리고 감정으로부터 보편적 힘을 이끌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견해는 정치적이다.


견해는 인지의 형식과 거의 일치할 정도로 유사하게 주조된 사고이다. 지각작용 내에서의 자질의 인지(관조), 감성작용 내에서의 집단의 인지(반성), 다른 집단과 다른 자질들의 가능성 내에서의 경쟁자와의 인지(소통)이다.


견해는 하나의 외연 및 본질적으로 ‘정통성’에 입각한 기준들의 참의 인지에 제공한다. 어떤 견해를 말함으로써 소속되는 한 집단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가 일치할 때, 그 견해는 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은 경합을 벌이는 특정 모임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러한 모임들에서 당신은 스스로의 견해를 피력할 뿐이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모임에 참가한 대다수와 동일한 견해를 피력했다면 당신은 ‘이긴 것이다.(당신은 참을 말했으므로) 견해란 본질상 대다수를 향한 의지이며, 이미 대다수의 이름으로 발언된 것이다. 심지어 ’역설‘을 표방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은 단지 모든 이들의 감추어진 견해를 발설할 따름이며, 감히 다른 사람들이 발설하지 못하는 것을 대변할 뿐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여러 번 눈을 껌뻑거리며 어리석은 자신감에 차 자신을 피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견해가 지배하는 첫 번째 행보에 불과하다. 선택된 자질이 한 집단의 이미지 내지 ‘표지’에 불과해질 때, 다시 말해 스스로를 집단의 성원 각자가 획득해야 하는 감정, 지각적-감성적 전형으로 한정시킬 때, 견해는 모든 것을 제압한다.


우리는 상호교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고귀한 영혼은 저마다 소소한 토론, 회합, 단순한 대화를 제안해 올 때면 언제나 슬그머니 도망치기 일쑤다. 모든 대화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철학의 앞으로 향방이건만, 많은 철학적 토론은 고작해야 세속적인 안목들의 대치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한다. 소통의 철학은 합의로서 자유분망한 보편 견해를 찾아 헤매느라 그만 기진해지고 말았으며, 거기에서 우리가 찾은 것이라곤 자본가 자신의 냉소적인 지각작용들과 감정들뿐이다.



--> 철학이란 무엇인가(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현대미학사) 208-210에서 발췌  

Posted by 졸리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올디제

    잘 모르겠지만, 결론은 '소통'이란 것인데...
    결국 '철학'이라는 물건이 우리랑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거니와...
    '철학'이라는 물건이 우리랑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군요.
    그것 참.

    2009.12.24 03: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졸리운

    결론은 소통에 넘 연연하지 말고 '개념' 좀 찾으라는 것으로 나는 들었다네^^

    물론 '개념'은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해야 하는 것이지만.

    2009.12.24 15: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티스토리 툴바